화성인 구별하기
화성인들은 끊임없이 지구인 연기를 하며 살기 때문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들을 알아보는 방법은 아이러닉하게도 과도하게, 지구인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모든 이방인들의 특징인 것으로 다른 행성, 다른 국가, 외지에서 살다 온 사람들, 특히 간첩을 식별하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규칙을 과도하게 지키며 그래서 오히려 튀게 된다. 보통 사회 내에선 모든 성문화된 규칙을 전부 지키는 사람은 없다. 즉, 모든 규칙을 과도하게 지키는 사람이 바로 이방인이라는 이야기다.
화성인은 살면서 지구인의 인간성에 대해 책과 영화 만화를 통해서 알게 된다. 이들은 그것을 토대 로 지구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서 그것을 연기하기 때문에 실제 지구인들과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게 된다. 왜냐하면 화성인이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지구인이 가끔은 비인간적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 바깥에 있을때도 있고 이기적이고 치졸하고 변덕이 심하고 모든 인간성에 합치되지 않는 잉여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법과 규칙을 끊임없이 어기면서 살아간다. 그 어김 자체가 이미 우리의 인간성을 실재의 차원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실재가 아닌 상징계의 차원에서의 인간성만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과도하게 인간적이 된다. 즉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인간들이 얼마나 착하지 못하며 악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지구인보다 월등하게 착한 존재들, 거의 비인간적일 정도로 착한 존재들은 과도한 착함을 의욕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러운 지구인의 이기심과는 양립할 수 없다. 화성인들은 사랑에 있어서도 책과 영화, 만화에 나온 그런 사랑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재로 지구인들은 그런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러닉하게도 가장 인간적인 덕목들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은 화성인들이 된다.
마치 여자들의 화장을 안한 맨 얼굴 자체를 화장한 얼굴로 생각하듯이, 가면이 아닌 본래의 모습을 가면중에 하나로 생각하듯이, 화성인들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나타낼 때 조차 일종의 가면으로 존재하게 된다. 화성인을 진짜로 구별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이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날 때이다. 사실 요즘엔 순수 화성인들보다도 그들을 모방하는 모조인간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화성인과 모조인간은 서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화성인은 오직 필요에 의해서 지구인만을 모방하려 하지만 모조인간은 때에 따라 수많은 형태의 각종 인간들을 전부 모방하려고 한다. 모조인간에겐 실체가 없지만 화성인에겐 본래적인 화성인다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모조인간과 화성인을 분리시켜준다.
실제로 화성인을 한번 구별해보자. 사랑할 능력이 없다거나 인간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거나 이런 걸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화성인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보통 인간들은 이런 걸 사실 별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인간들이기 때문에 지구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구인스럽지 않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화성인들만이 과도하게 지구인스러움에 집착하며 그것의 부재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 지구인들은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하다. 지구인들은 한마디로 화성인의 지구인 이데올로기와 일치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지구인 이데올로기는 책과 영화 만화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우리의 삶은 책과 만화 영화 등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화성인들은 마치 간첩처럼 자신들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것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지구의 법칙과 규칙을 지켜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과도하게 규칙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범죄도 저지르고 그밖에 다양한 방식으로 법칙과 규칙을 어기면서 살아간다. 마치 그것이 어기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아무리 잘 훈련된 로봇이라고 할지라도 규칙을 어기는 것을 인간처럼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담배피우기, 무단횡단하기에서부터 강간하기, 살인하기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은 그렇게 인간성의 안쪽과 바깥쪽을 횡단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로봇은 혹은 화성인은 그게 불가능하다. 화성인들은 지구인 이데올로기, 즉 인간성에 집착한 나머지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인 누군가가 된다. 내가 사랑에 있어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사랑을 거의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대했으며 어떤 순정만화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무엇으로 대했다. 하지만 보통 인간들은 사랑을 그렇게 대하지 않을 뿐더러 사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거의 멸종단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섹스와 센티멘탈리즘이 사랑을 대체하고 있다고 장 뤽 낭시가 이미 쓴 바 있지만 이것은 경험으로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번도 사랑받아 본 적이 없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런 식의 사랑은 말이다. 지구인들에게 사랑은 치졸함과 이기주의와 그런 모든 인간의 단점들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라기보다는 시장바닥의 소란스러움을 닮아있다. 그런 한에서 내 사랑들은 오히려 너무나도 순수했기 때문에 그 이방인적인 모습이 더욱 강렬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실재의 차원에서 보자면 나도 사랑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의 이데아를 추구하려 했으며 그것을 손아귀에 넣고자 힘썼다. 그렇지 못한 데 대해 죄책감까지 가지면서 말이다. 바로 이런 식의 태도가 화성인적인 태도다. 화성인의 정의와 화성인의 실재는 거의 정반대다. 이것은 지구인스러움과 지구인의 실재가 일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지구인은 사랑에 극도 로 충실하지 못하며 항상 그들의 동물적 이해타산에 유혹되곤 한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사랑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사랑에 극도로 충실하려고 한다. 거의 강박적으로 말이다. 지구인들이 섹스와 센티멘탈리즘 사이에서 맴돌때 사랑에 대해 플라톤적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오히려 화성인들이다. 이것은 죽음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성인들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지만 바로 자신들이 그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을 슬퍼한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장례식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좀 슬퍼하는 척 하다가 온다. 어떤 인간적인 덕목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과도하게 지킬려고 하는 것은 화성인들이다. 반대로 그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은 지구인들이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구인들은 굳이 자신들이 지구인스럽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반대로 화성인들은 자신들에게 지구인스러움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지구인스러움에 항상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
The Sleepless Ones by Lawrence Tirnauer
로렌스 티르노
새벽 두 시, 세 시, 또는 네 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간다면,
만일 백 명, 천 명, 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예를 들어 잠자다가 죽을까봐 잠들지 못하는 노인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따로 연애하는 남편
성적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식과
생활비가 걱정되는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운이 없는 여자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만일 그들 모두가 하나의 물결처럼 자신들의 집을 나온다면,
달빛이 그들의 발길을 비추고
그래서 그들이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살기 힘들어질까.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까.
사람들은 더 멋진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더 외로워질까.
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들 모두가 공원으로 와서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태양이 다른 날보다 더 찬란해 보일까.
또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그들이 서로를 껴안을까.
슬픈 환생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 준단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 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거짓말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 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사막의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나
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사령(死靈)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윤달
손톱을 깎으면 그늘이 밀려와요 자라나는 것들은 그늘을 거느리죠 눈 밑에 손톱 밑에 지구의 허기 밑에 달은 베어 먹기에 좋고 당신 뒤에는 내가 있어요
거기 식물처럼 길어지는 마음을 가진 아가씨 당신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알아요 당신이 접어서 상자 속에 넣어둔 일들은 그대로 이루어질 테니
초콜릿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후회했어요 나는 왜 치즈케이크를 먹지 않은 거지 물이 없었다면
바다가 없었다면 염소가 없었다면 공장장이 없었다면 아버지나 디제이가 없었다면
당신에 대해 뒤에서 말할 때 양팔이 생겨나요 숲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는 숲 전체가 이동하는 중이죠 식물들의 발바닥이 찍히고 있는 중이죠 당신은 저만큼 가고 있고 케이크를 떠먹을 때마다 달콤한 스푼은 밀러오고
그러니 아가씨여
마음에 품고 있는 걸 말하지 마요 그대로 다 이루어질 테니
너는 나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나의 시드볼트
안희연
금고를 열면
씨앗처럼 웅크린 사람이 있다
함부로 열지 말랬잖아 한번 죽었으면 됐잖아 비극도 습관이야
그는 항상 투덜대지만
번번이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게는 같은 이야기를 매번 다르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가 다녀간 후엔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방안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개들은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시름시름 앓고
온 벽은 이끼로 뒤덮이지만
나는 그가 죽음을 말하는 방식이 좋다
나는 이 누수를 멈추고 싶지 않다
그는 귀신같이 내 눈빛을 읽는다
누가 누굴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네
너는 나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언젠가 그는 처음 있었던 곳으로 돌아간다
흙속에 묻히길 기다리는 씨앗의 일을 한다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거야, 그게 너의 영원이야
그의 마지막 인사는 십 년이 지나도 똑같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이 새는 곳은 없다
그래도 물이 떨어진다